일단 project euler 글은 써도 어차피 볼 사람도 없고, 51번 풀다가 만 지 벌써 몇 달이 지난 것 같아서 관두고 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풀어 둔 거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생각도 정리할 겸해서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일단 뜬금없지만 바깥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여기서 바깥 세계라 함은 우리가 의심 없이 지각할 수 있는 자아 외의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치고 있는 이 키보드라든가 하는 것들. 이것들은 과연 실제로 존재할까? 이런 질문을 하면 내 정신상태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멀리 갈 것 없이 누구나 아는 영화 <매트릭스>를 생각해 보자. 혹은, 디씨 꾸준글이었던 "우리가 통 속에 든 뇌라면? 어떤 미친 과학자가 우리를 자극하고 있는 거라면?"을 생각해도 좋다.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외부 세계가 단순한 자극인지, 혹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인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없다.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요소도 그대로 짜넣으면 해결될 일이다. 즉 유감스럽지만 외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1 근데 그럼 과학은 해서 뭐할까? 야! 신난다, 놀자!
그런데, 그게 실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해서 과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놀지 말자. 왜 무의미하지 않은가?
우선,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세계는 같거나 매우 비슷하다(정확히 말하자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것들이 떠들어대는데, 잘 들어 보면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외부 세계 내지는 환상이랑 꽤나 비슷하다). 편의상 그 어떤 것들을 사람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리고 그 어떤 것들도 내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내가 그 대상들을 사람이라고 부른다고 꼭 사람이 실재한다는 것은 아니다.2 여하튼 그 사람들이 내가 과학을 잘 모르면 좀 무식한 놈 쳐다보듯(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들에게서 어떤 반응이 있는데, 그걸 편의상 쳐다본다는 용어로 서술하자.) 하기도 하고, 쓸데없는 짓 하면 고통을 주기도 한다. 이 고통도 실재하는지 어떤지 보장이 전혀 없지만, 여하튼 고통스럽고 짜증스러우니까 그런 일 없도록 잘 해 보자. 그래서 사람들과 부대껴 살아가면서 귀찮음과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데, 예를 들면 여태까지 일어난 일을 잘 분석할 수 있고 앞으로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떨까? 좀 쓸모가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과학이다(역사적인 순서와는 좀 다를 것이다).
일단 내가 세계를 보고 어떤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들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실험을 통해 규칙을 만들고, 그걸 잘 예측했다고 하자. 근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게 설득력이 있고 다 맞다고 얘기해 준다. 그렇다면 비록 그 용어와 규칙이 맞는지 안 맞는지(연역적으로 말이다) 모르지만, 하여튼 쓸모가 있고 널리 쓰일 수 있으니까 유용한 것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은 그저 도구일 뿐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명제는 없고, 다만 세계의 대상들에 이름을 붙이고, 규칙을 만들고, 예측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의 집합일 뿐이다. 내 눈 앞에 키보드와 마우스가 있는데, 키보드의 키캡을 제외한 부분을 보드라고 이름붙이고, 마우스와 키캡을 합친 부분을 키마우스라고 할 수도 있고, 그것으로 키보드와 마우스에 대해 서술하고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3. 다만 그것은 키보드와 마우스로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불편한 설명의 방식을 제공할 뿐이다. 뭐하러 불편한 짓을 하는가. 루돌프 카르납의 말마따나, 시간이라는 연속체도 임의의 단위(예를 들자면, 나의 심장박동이라든가)로 쪼개고, 그것으로 세계를 서술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진자의 움직임, 어떤 원자의 진동수, 지구의 공전 주기, 이런 것들 따위가 쪼개서 서로 비교해 보았을 때 일정한 비율로 나타나고, 따라서 그것을 시간의 척도로 삼는 것이 세계를 가장 효율적이고 편하고 단순하게 서술하는 방식일 뿐이다. 즉, 과학은 단순히 편리한 도구일 뿐이지, 과학에서 말하는 개념들은 엄밀하게 말해서 실재한다고 할 수 없다. "이게 무슨 소리요?" 할지 모르겠지만, 과학에서의 도구주의와 실재론의 논쟁을 다룰 때 흔히 나오는 원자나 전자의 존재 또한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확실치 않다. 다만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외부 세계를 서술하고 예측할 수 있으면 편하니까 여러 가지 개념을 가장 편한 방식으로 갖다붙이는 것이다.
앞으로의 논의에서는, 편의상 외부 세계와 몇몇 개념들(질량, 시간, 공간 등)에 대해 말할 때 "마치 실재하는 것 같은" 따위의 말을 생략하고,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설명하겠다. 어디까지나 편의상 생략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그러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글에서는 과학에서의 명제의 신뢰도에 대해 좀 얘기를 해 볼까 한다.

